청자·분청사기·백자, 그릇의 표면은 어떻게 읽을까요?
바탕흙·백토·유약을 구분하고 상감·조화·인화·철화의 흔적을 찾아, 청자·분청사기·백자 한 점을 천천히 살펴보세요.
청자·분청사기·백자, 그릇의 표면은 어떻게 읽을까요?
‘초록색이면 청자, 하얗다면 백자’라고 먼저 답하기보다, 무엇으로 빚었고 표면에 무엇을 더했는지 물어보세요. 같은 흰색이라도 바탕흙 자체의 색인지, 그 위에 입힌 백토인지에 따라 설명이 달라집니다. 그릇 이름을 모두 외우지 않아도 바탕·표면·무늬를 나누어 보면 한 점을 더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1]
흙, 백토, 유약은 서로 다릅니다
바탕흙은 그릇의 몸체를 만드는 재료입니다. 분청사기는 회청색 바탕흙으로 빚은 그릇에 백토를 입히고 장식한 뒤 유약을 씌워 구운 도자기입니다. 이때 백토를 물에 풀어 표면에 입히는 것이 백토 분장입니다. 백토는 흰 흙으로 만든 층이지 유약 자체가 아닙니다. 유약은 굽는 과정에서 표면에 유리질 층을 형성하는 재료로, 백토나 무늬 위를 덮을 수 있습니다. 백자는 흰 바탕흙으로 몸체를 만들고 유약을 입힌다는 점을 먼저 구분해 주세요.[1][6][13]
입구와 굽 주변에 바탕이 드러나 있는지, 흰 층의 경계가 보이는지 살펴보세요. 다만 사진에 보이는 밝은 반사광을 백토나 무늬로 읽지는 마세요. 바닥이 보이지 않거나 조명이 강하면 육안만으로 재료를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관찰한 모습과 설명문의 재료·기법을 함께 읽는 편이 좋습니다.
청자: 녹색 다음에는 선을 보세요
청자를 볼 때는 유약의 녹색 계열 색감뿐 아니라 무늬를 만든 방법을 찾아보세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청자에 상감 외에도 음각·양각·투각·철화 등 여러 기법이 쓰였다고 설명합니다. 청자가 모두 민무늬이거나, 무늬가 모두 붓으로 그려졌다고 생각하면 놓치는 부분이 많습니다.[3]

연꽃·매화·대나무무늬가 있는 청자 편호, 14세기,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사진의 공식 명칭은 ‘청자 상감 연꽃·매화·대나무무늬 편호’입니다. 상감은 파낸 무늬에 흰 흙이나 검은 흙을 메우는 기법입니다. 앞면의 연꽃 윤곽과 주변의 밝고 어두운 선을 따라가 보세요. 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상감을 확정하기보다는, 라벨의 ‘상감’과 눈앞의 대비를 연결해 보는 예입니다.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 아니라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품입니다.[5]
분청사기: 흰 층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분청사기에서는 백토를 어떻게 입히고 다뤘는지가 중요한 관찰 단서입니다. 흰 층을 긁어 선을 내는 조화, 무늬 밖의 백토를 넓게 걷어 바탕과 대비시키는 박지는 서로 다릅니다. 대표 사진의 ‘분청사기 박지 모란무늬 편병’은 박지 장식의 예입니다. 백토에 남긴 붓 자국과 새긴 선도 같은 흔적으로 보지 마세요.[4][6][14]

흰 분장 위에 물고기를 새긴 분청사기 병, 15~16세기,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사진의 ‘분청사기 조화 물고기무늬 병’에서는 물고기 윤곽과 지느러미를 따라가며 흰 분장과 새긴 선의 관계를 보세요. 이 물고기는 사진만 보고 철화라고 부를 대상이 아닙니다. 반면 인화는 도장처럼 무늬를 찍고 그 자리에 백토를 메우는 장식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장흥고’가 새겨진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에는 국화무늬와 관청 이름이 함께 있습니다. 반복되는 작은 무늬와 글자를 읽는 다른 예이며, 위 물고기 사진과 같은 유물은 아닙니다.[6][8][12]
철화는 철 성분의 안료로 그린 무늬를 말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분청사기 철화 모란무늬 장군’은 흰 분장 위에 짙은 무늬를 그린 액체용 용기입니다. 어둡게 보이는 선이라도 상감인지, 백토를 긁어 드러낸 선인지, 안료로 그린 선인지 라벨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9]
백자: 흰 그릇에도 무늬가 있습니다
백자는 흰 바탕흙으로 만든 그릇이지, 반드시 아무 장식도 없는 그릇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진의 ‘철화 백자 운룡무늬 호’는 17세기 후반 작품으로, 유약 아래에 철 안료로 용과 구름을 그린 백자입니다. 몸체의 재료와 장식의 재료를 따로 읽으면 짙은 그림이 있는 백자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1][7]

용과 구름을 철 안료로 그린 백자 항아리, 17세기 후반,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용의 비늘에서 굵기가 달라지는 붓선을 찾아보세요. 앞의 상감 청자에서 흙을 메운 선을 따라갔다면, 여기서는 안료로 그린 선을 살펴보는 셈입니다. ‘철화’라는 장식 기법이 분청사기와 백자 양쪽에 쓰일 수 있다는 점도 세 종류를 색 하나로 나눌 수 없는 이유입니다.[5][7][9]
이름을 한 점의 설명으로 바꿔 보세요
라벨을 ‘재료와 종류 / 장식 기법 / 무늬 / 형태 / 시대’로 나누어 읽어 보세요. ‘철화 백자 운룡무늬 호’에서는 백자가 몸체의 종류, 철화가 장식 방법, 용과 구름이 무늬, 호가 항아리 형태를 알려 줍니다. 이어 그릇의 입구와 몸통을 살피고, 설명문에 쓰임이 적혀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국립전주박물관은 도자기가 의례와 일상생활 모두에 쓰였다고 설명합니다. 모양만으로 정확한 용도를 단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2][7]
고려청자,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는 중요한 역사적 흐름이지만, 서로 딱 잘라 교대하는 세 단계는 아닙니다. 조선 초에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함께 만들어지고 쓰였습니다. 한 전통의 변화나 쇠퇴를 모든 도자기 제작의 일제 소멸로 읽지 마세요. 오늘 작품 하나를 고른다면 ‘하얀 그릇’ 대신 ‘흰 바탕흙에 철 안료로 용을 그린 백자 항아리’처럼 설명해 보세요. 색보다 더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1][2][7]
공식 해설과 작품 정보
[2] 국립전주박물관 미술공예실
[3]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해설
[4] 클리블랜드: 모란무늬 편병
[5] 클리블랜드: 상감 청자 편호
[6] 클리블랜드: 물고기무늬 병
[7] 클리블랜드: 철화 백자 항아리
[12] 클리블랜드: 인화 장식의 재료·기법
[13] V&A: 도자기 용어 해설
사진 출처
• 대표 사진: Cleveland Museum of Art, 1921.649, CC0 1.0; 원본 JPEG, 자르기·보정 없음.
• 청자: Cleveland Museum of Art, 1918.471, CC0 1.0; 원본 JPEG, 자르기·보정 없음.
• 분청사기: Cleveland Museum of Art, 1962.153, CC0 1.0; 원본 JPEG, 자르기·보정 없음.
• 백자: Cleveland Museum of Art, 1986.69, CC0 1.0; 원본 JPEG, 자르기·보정 없음.